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셀레우코스 제국 (문단 편집) === [[안티오코스 2세]]: 제2차 [[시리아 전쟁]]과 동방의 이탈 === [[안티오코스 1세]]가 죽고 [[안티오코스 2세]]가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즉각 휴전을 깨고 북진하여 이오니아의 몇몇 도시를 점령했다. 그는 이에 맞서고자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와 연합하여 함대를 지원받았고, 코스 해전에서 이집트 함대를 궤멸시켰다. 이후 남하하여 팜필리아와 이오니아를 탈환했으며, 뒤이어 밀레소스와 에페소스를 점령한 뒤 소아시아 그리스 도시국가들로부터 '테오스'(Theos: 신)라는 칭호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트라키아를 공략하려 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만 비잔티움에서 그의 이름으로 동전을 발행했던 걸 볼 때, 비잔티움을 영유한 건 성공한 듯하다. 기원전 257년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반격에 나서 시리아 일부를 공략하였다. 여기에 코린토스와 칼카스를 선동하여 마케도니아에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안티고노스 2세는 어쩔 수 없이 그리스로 철수했다. 게다가 안티오코스 2세가 시리아 전쟁에 열을 올리느라 동방 속주에 별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 [[파르티아]]와 [[박트리아]]에서 사트라프들이 잇따라 반란을 일으켰다. 파르티아의 사트라프 안드라고라스는 독립을 선포했고, 박트리아 총독 디오도토스도 기원전 256년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권을 부정하고 자신이 왕이라고 선포했다. 상황이 이처럼 좋지 않게 돌아가자, 안티오코스 2세는 프톨레마이오스 2세와 화해하기로 하고, 아내 라오디케 1세와 이혼한 뒤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딸 베레니케와 결혼했다. 안티오코스 2세는 전 아내 라오디케 1세가 일리온, 카리아, 키지쿠스 등 아나톨리아 전역의 다양한 지역에서 토지를 소유하도록 했고, 면세 해택도 줬다. 안티오코스 2세와 결혼한 베레니케는 안티오코스라는 이름의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기원전 246년 7월, 안티오코스 2세는 소아시아의 영지를 관리하던 라오디케 1세와 재회했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제국은 멸망의 위기에 직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